2023. 10. 02

12:24

날이 좋네요. 가을다운 청명함이 있어서 좋은걸요. 밀레시안들은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찌는 계절이라고 한다죠? 은퇴한 제 말도 그랬으면 좋겠는데요. 나날이 살이 빠지고만 있는 것 같아서요.

(아발론으로 나선 르웰린이 휘파람을 불었다. 어디선가 색 바랜 고동색 갈기의 건장한 말이 달려온다.)

제 말입니다. 말년은 아발론에서 자유롭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데려왔어요.

(안녕, 인사한 르웰린에게 말이 고개를 숙여 이마를 툭 대었다. 머리를 쓰다듬는 그 손길에 담담한 애틋함이 묻어난다. 각설탕을 받아먹은 말이 자세를 낮추자 그가 머뭇거렸다. 늙은 말에게 무리가 될까 걱정하는 눈치다. 좀처럼 타지 않으려는 주인을 향해 말이 투레질했다.)

으음...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이 녀석도 고집이 제법 있거든요. 아니면 같이 가셔도 좋고요. 말 있으시죠?

(서러브레드를 소환해 올라타자 르웰린의 말이 한두 번 발굽을 구르더니 느긋하게, 하지만 경쾌한 걸음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가 뒤따르는 당신을 흘끗 보고는 지나가듯 말한다.)

그나저나 그 표정은 뭔가요? 제 말의 고집이 절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2023. 10. 05

21:29

(르웰린은 망루의 꼭대기에서 풍등을 달고 있다. 밤이 깊어 반짝이는 풍등이 꼭 등대에 걸린 그것처럼 멀리까지 빛을 전송한다. 망루 아래 도착한 당신이 손을 크게 흔들자 그가 금세 당신의 기척을 눈치채고는 등불을 손으로 가렸다 떼며 불빛을 깜박여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올라오실래요?'

(여타 신호들이 그렇듯 짧고 한정된 어휘를 사용하지만 일상어로 번역한다면 이런 느낌의 말일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그가 내려오는 것보단 자신이 올라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 망루를 올랐다. 꼭대기의 문을 열자마자 서늘한 가을밤의 공기와 함께 탁 트인 아발론의 전경이 밀려 들어온다.)

좋은 밤이죠, 밀레시안 님. 이제 카브에서는 풍등 축제가 끝났다고 하더군요. 그래도 끝나가는 여름이 아쉬운 만큼 더 보고 싶으실 것 같아 달아 봤습니다. 허가는 받았으니 걱정 마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