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8. 06

22:09

모처럼 임무를 이르게 마치고 잠이 든 르웰린을 누군가 깨운다. 길고 날렵한 몸, 풍성한 꼬리, 커다란 앞발, 정원 고양이 아이루산 폐하다.

저택의 주인은 돌아누우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는 쪽을 택했다. 침대 밑의 낮고 작은 소리는 그의 단잠을 깨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곧바로 응징이 이어졌다. 와락 침대로 뛰어든 루가 앞발로 인정사정없이 이불 뭉치를 흔든다. 옹골찬 근육으로 빚어진 커다란 고양이가 체중을 실어 누르는 통에 억눌린 신음이 새었다.

...왜요...

주섬주섬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 르웰린이 반쯤 감긴 눈으로 옅은 푸른빛이 도는 연회색 눈을 응시한다. 루가 앞발로 바닥을 두 번 두드렸다.

...사료?

그 많은 사람을 두고? 저택의 다른 이들은 수많은 선택지 가운데 자신을 택해준 것을 감격스럽게 여기지만, 그로 말할 것 같으면 기꺼이 시중 들어줄 이들을 놔두고 왜 굳이 자신을 괴롭히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루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은 르웰린이 없을 때 찾는 예비 집사일 뿐이니까.

기어코 집사를 끌어낸 루가 만족스럽게 앞장섰다. 내리는 빗소리 사이로 잘 관리된 나무 바닥 위를 두드리는 톳톳톳 소리가 스며들어 경쾌한 울림을 자아낸다. 그 뒤를 슬리퍼 소리가 느리게 따른다.

연일 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하는 날씨 탓에 루는 결국 저택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일주일에 한 그릇이나 빌까 하던 사료도 빠르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쥐나 도마뱀 같은 사냥감은 실내엔 없으니까. 자유의 대가로 맛없는 기생충 약을 먹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루는 바깥이 그립다.

쓰지 않은 지 몇 세대는 되었을 작고 오래된 부엌까지 따라간 르웰린이 주변을 가볍게 훑는다. 이곳은 루의 아지트다. 바닥도 거칠고 바깥 냄새가 많이 나서 특히 좋아하는 곳이다. 찬장에서 건사료와 캔사료를 꺼낸 그가 어떤 것을 주느냐는 듯 루를 돌아보았다. 잠시 고민하던 루는 건사료 밑에 세 번, 캔사료 밑에 한 번 앞발을 두드린다. 건사료 위에 습식 토핑을 살짝 얹어 달라는 뜻이군. 르웰린은 깨끗한 새 그릇에 사료를 붓고 통조림을 따 삼분의 일을 덜어주었다.

남은 습식은 실리엔 밀폐용기에 담겨 루만을 위한 작은 힐웬 냉각실에 들어간다. 기존의 그릇과 스푼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며 씻겨졌다. 드물게도 물을 좋아하는 고양이인 루는 흐르는 물줄기에 앞발을 넣었다 뺐다 하며 장난을 치느라 바쁘다. 그렇게 젖은 털을 핥는 동안 설거지를 마치고 늘 같은 자리에 그릇을 내려놓은 집사가 새벽의 식사를 즐기는 고양이 뒤에 쪼그려 앉아 지켜보다가 문득 물었다.

루, 혹시 '야옹'인가요?

당연하게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식사하는 속도가 조금 느려진 것 같기도 하지만 평소와 크게 다를 바는 없는 듯하다.

야옹이 분양되기 시작한 이후로 조원들의 호들갑이 늘었다. 덩치도 크고, 밀레시안이 둔갑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을 정도로 똑똑하고, 사냥도 잘하고, 마력 대신 신성력을 받아들여 열 살이 넘는 나이에도 쌩쌩한 것이 딱 야옹 아니느냐고.

물론 르웰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루는 그냥 평범한 티르 코네일의 숲이나 시드 쿤이다. 혹은 그 혼혈이거나. 어떻게 그렇게 멀리서 사는 종이 라흐 왕성 앞까지 흘러들었는지는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아마 특이한 고양이를 원하던 누군가가 기르다 버렸거나 잃어버린 것이겠지.

당연히 티르 코네일의 숲과 시드 쿤 중에도 야옹은 있지만 그것이 루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설령 그렇다 해도 바뀌는 것은 없다. 루를 데리고 전장에 나갈 것도 아니니까. 아이루산은 신시엘라크의 모든 저택과 정원을 영토로 가진 고양이 왕이고 그 자리에 만족한다. 그리고 르웰린을 비롯한 모든 저택의 구성원들도 그런 루를 존중한다. 루가 영위하고 싶은 삶은 이곳의 삶일 것이다.

르웰린은 루가 설령 야옹이라도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니 걱정 말라고 속삭인 뒤 구석에 틀어박혀 눈을 감았다. 얇은 잠옷 차림 그대로 나왔더니 조금 서늘하다. 하지만 곧 식사를 마친 따뜻한 담요가 생길 테니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돌아가기도 귀찮아진 그는 그대로 잠시 눈을 붙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