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02. 04
19:49
글쎄요, 귀족이 교양으로 즐기는 스포츠라면 필요한 만큼은 합니다. 어릴 때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하던 것들이 성인이 되면 사교와 사업의 수단이 되곤 하죠. 실력이 너무 뒤떨어지면 사업상 져 줘야 되는 상황일 때 서로 곤란하기 때문에 교양이라고 하는 겁니다.
물론 저는 몸이 약하다는 핑계로 귀족 아이들의 스포츠 모임을 곧잘 피해 다니곤 했지만, 대신 알반에서 다같이 배웠기 때문에 못하지는 않습니다. 꽤 즐거웠던 시간으로 기억하고요. 스포츠 얘기가 나와서 궁금하셨나 보군요?
뭐, 그래도 어려서나 커서나 당구 모임만큼은 피할 수 없었죠. 덕택에 꽤 합니다. 굳이 상대가 제게 져줄 필요 없이 실력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만큼요. 어때요, 한 판 치실래요? 간단한 내기를 걸어도 좋고요.
2023. 02. 05
16:40
흠, 그렇군요. 한 해의 복을 비는 전통적인 방식이라고요. 알겠습니다.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그럼 호두 까는 도구를 가져와서... 네? 껍질째 깨물어야 한다고요? ...호두인데요? 호두에 붙은 건 솔직히 껍질이 아니라 껍데기잖아요. 환생하면 된다고 본인의 치아를 너무 막 쓰시는 듯한데요. 전 됐습니다. 여기 있는 땅콩이나 깨물게요.
(르웰린은 볶은 피땅콩 하나를 집어 들어 반으로 갈랐다. 껍질 까지 않은 땅콩은 옆으로 뉘어 놓으면 나름대로 무한대 기호처럼 보여서 이걸 깨물면 한 해가 풍성해질 것 같다. 당신이 겉껍질째 깨물어야 한다고 말하자 그가 쓰고 떫은 맛을 떠올리는 듯 인상을 찡그리며 반으로 갈라진 피땅콩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겉껍질은 못 먹잖아요.
A. 뱉으면 된다.
...…
(르웰린의 표정이 더더욱 미묘해졌다.)
어떻게 한번 입에 들어간 걸 뱉나요. 상한 것도 아닌데요.
밀레시안 님, '이래서 귀족들이란' 하는 그 표정은 뭐죠? 이건 귀족의 문제가 아니라 매너의 문제라고요.
B. 힘내서 삼키면 된다.
...…
(르웰린의 표정이 더더욱 미묘해졌다.)
굳이 힘낼 필요 없이 그냥 안 깨물면 되지 않을까요. 밀가루도 먹을 수 있는 밀레시안들의 기준에서도 힘까지 내야 할 정도면 완전히 못 먹을 맛이라는 거잖아요.
(그는 단호하게 겉껍질을 버리고 알맹이만 손에 쥐었다. 피땅콩 하나에서는 보통 땅콩 두 개가 나온다. 그 한쪽을 당신에게 건넨 르웰린이 얇고 붉은 껍질로 뒤덮인 고소한 냄새가 나는 땅콩을 잠시 바라보았다. 수분이 빠져 바스락 소리가 나는 것이 잘못 건들면 껍질이 금세 벗겨질 것 같이 생겼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잡아 본다.)
아무튼, 속껍질도 껍질은 껍질이니까요. 그럼, 잘 먹겠습니다.
(와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