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09. 02

17:04

하늘이 높고 푸르네요. 가을이라는 체감이 들지 않나요. 그 말인 즉슨 밀레시안 님의 눈길을 끄는 여름 행사가 곧 종료된다는 거죠. 알... 단장님은 벌써부터 당신께서 아발론에 돌아오실 때가 기대된다며 들떠 있더군요. 어차피 바빠서 자주 뵙지도 못할 텐데 그리 좋으냐고 물으니 가까이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마을 앞 장승이나 토템도 아니고... 흠. 생각해 보니 가만히 서 있는 걸 좋아하시니까 크게 다른 것 같지 않긴 한데요.

뭐, 그러니 기왕 아발론에서 석상 놀이 하시는 거, 단장님께 힘이 될 수 있도록 게이트 근처에 서 계셔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망루 앞이라든가, 그런 곳이요. 겸사겸사 저도 보실 수 있잖아요? 살짝 빠져나올 테니까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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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09. 04

18:47

(비옷을 입은 르웰린이 게이트를 살펴보고 있다. 폭풍 전야, 모든 건물의 창문이 단단하게 잠긴 채로 틀이 흔들리지 않도록 잘 고정되어 있는지, 창고는 거센 바람에 문이 열려버리지 않도록 고임목을 제대로 받치고 문에 쇠사슬을 둘러 뒀는지, 밖에 나와 굴러다니는 물건은 없는지, 안으로 들이지 못하는 물건들은 잘 묶어 고정해 뒀는지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듯하다.)

(말이 투레질하는 소리나 개의 경쾌한 발걸음 소리, 그리고 고양이의 나른한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게이트. 모두가 실내에서 폭풍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다. 말은 바깥이 내다보이는 간이 마구간에서 숙소에 딸린 마구간으로 전부 들여보냈다. 하나같이 초원을 달리던 강인한 혈통을 물려받았지만 그래도 초식동물이라 소리에 예민한 것은 어쩔 수 없어서, 함께 들어간 개와 고양이들이 폭풍의 밤을 날 동안 곁에 머무르며 안정감을 찾도록 도와줄 것이다. 마구간 안에 부족한 것은 없는지 게이트의 동물 식구들을 살피러 갔다가 안에서 당신과 마주친 그가 꾸벅 고개를 숙여 보였다. 새끼 고양이를 데려와 달라고 부탁한 참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해결해주실 줄은 몰랐다.)

고양이를 데려와 주셨나요, 밀레시안 님? 상냥하시네요. 한창 날쌘 시기라 어른 고양이들도 데려오기 버거워 하는 것 같더라고요. 감사합니다.

(조심스럽게 램프를 켜고 머릿수가 맞는지 세어 보았다. 말도, 개도, 고양이도 전부 무사히 들어왔다.)

음, 숙소 로비 공용 휴게실에 티백이 좀 남아 있을 법도 한데요. 차라도 한 잔 들고 가시겠어요? 아무래도 안에서 먼저 문을 잠가야 할 것 같거든요. 밖으로 나가는 사이에 고양이가 달아나면 안 되니까요.

(램프를 당신에게 맡긴 르웰린이 마구간의 문을 닫아걸었다. 빗장이 걸린 문을 두어 번 흔들어 단단히 잠겼는지 확인해 보고는 반대편에 난 문을 열어준다. 당연하게도 쪼르르 달려 나온 새끼 고양이를 미리 준비하고 있던 그가 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안 된다며 잠시간 실랑이를 하다가 심통이 난 고양이에게 손을 깨물리고 나서야 문을 닫을 수 있었다. 이쪽 문도 바깥에서 잘 잠갔다. 웬만하면 숙소 로비에라도 풀어주고 싶지만 만일의 사태에는 문을 열고 나가야 할 테니 어쩔 수 없다. 웬만큼 무거운 물건도 날아다닐 폭풍 속에서 숙소를 빠져나간 어린 고양이가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잠깐만 여기 계셔 주실래요? 바깥에서 마구간 문을 한 번 더 잠그고 올게요. 차가 식기 전에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 두어 세대쯤은 물려온 듯한 여기저기가 찌그러진 양철 컵 두 개─그나마 상태가 제일 좋은 것이었다─를 꺼내 티백을 넣은 그가 뜨거운 물을 부어 당신 앞으로 밀어주며 말했다. 곧 우비의 후드를 뒤집어쓴 그가 숙소 밖으로 달려 나간다.)

후우... (약속대로 금방 돌아오긴 했다. 바람 때문에 후드가 뒤로 날려갔는지 머리가 쫄딱 젖은 채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