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1. 01

15:04

(르웰린은 신시엘라크 저택에서 정화와 축복의 의식을 치르고 있다. 사제는 신을 대리하여 지상을 축복하는 자. 그 이름에 걸맞는 순백색의 예복이 길게 자락을 드리운다.)

(예배가 지루했는지 어디론가 사라졌던 루가 성찬식 순서가 되어서야, 그것도 줄이 한참은 줄어들고 나서야 맨 뒤에 와 섰다. 한 명 한 명 모든 이에게 축복을 내린 르웰린이 루에게도 축복을 내려준다. 물론 루는 인간의 음식을 먹지 못하므로, 따로 축성해둔 루 몫의 음식을 주었다.)

(식을 마친 르웰린이 당신을 바라보며 새해 인사를 건넨다.)

매일 새롭게 떠 앞길을 비추는 팔라라처럼, 그 같은 주신의 축복이 당신께 깃들기를 기원하겠습니다, 밀레시안 님.

2020. 01. 03

19:53

(잠긴 문을 열고 집무실로 들어섰다. 집무실은 여전히 마지막으로 보았던 어지러운 그 모습 그대로다. 르웰린은 눈을 한 번 감았다 뜨고는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전도에서 핀을 뽑아 작은 상자에 넣고 부엉이 깃털은 모아 버리고 굴러다니는 펜대는 펜 트레이에 올려둔다. 말라버린 잉크와 녹슨 펜촉은 쓰레기통에 버렸다. 흩어진 서류는 보관할 것과 폐기할 것으로 분류하여 보관할 것은 캐비닛에 넣고 폐기할 것은 노끈으로 묶어 소각장으로 보내도록 X 표시를 한 후 문 근처에 두었다. 먼지 앉은 곳은 먼지떨이로 털어내고 비질까지 말끔하게 마친 후에야 책상에 앉는다.)

(익숙한 자리에 앉자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짧은 한숨과 함께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 피곤을 물리고는 그간 쌓인 서류를 넘겨보았다. 결정권자가 자리를 오래 비웠던 만큼 일을 진행시키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럼에도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내주었다. 비록 알터와 아벨린과 밀레시안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결국 그들은 루나사만큼 이 일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조원들이 없었다면 루나사의 주요 업무는 마비되었을 것이다.)

(그간 처리된 일들을 살펴보았다. 공과를 가려 치하할 일은 충분히 치하하고 시정할 부분은 스스로 돌아볼 수 있도록 알아듣기 쉽게 주석을 달았다. 조원들의 인사 파일을 꺼내 발전한 사항을 기입하고 부족했던 부분에 대해서는 훈련 일정을 짜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다른 조원이 있다면 함께 임무를 진행할 수 있도록 그 부분에 대해서도 메모해둔다. 조원을 따로 한 명씩 불러 면담한 뒤 임무를 보낼 이는 임무를 보내고, 훈련을 지시할 이에겐 훈련 일정을 건네주고, 보고를 받아야 할 이에게서는 보고를 받았다. 모든 일을 정리하여 궤도에 올려놓고 나니 새삼스럽게도 돌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잠시 눈을 감았다. 깊은 안도가 느껴진다. 자신이 없어도 루나사는 잘 돌아가리란 데서 오는 안도다. 비록 이번엔 약간의 삐걱거림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스템은 정교해질 것이고 조원들은 발전해나갈 것이며 잡음은 최소한으로 줄어들 것이다. 종래엔 제가 없어도 모든 일이 완벽히 돌아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는 바랄 것이 없다. 르웰린은 긴 한숨과 함께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은, 어디로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