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08. 01

00:31

─루나사군요. 나쁘지 않은 휴일이 될 것 같네요. 서재에 책을 좀 들여놓을까 하던 참인데요. 추천해주신다면 기꺼이 받을게요.

09:06

우산도 우산이지만 수건과 양말을 챙기시는 게 좋겠네요. (집무실과 가까운 곳이라 우산 없이 나갔다가 갑작스러운 비와 맞닥뜨려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닦아내고 있다.)

10:09

휴일엔 뭘 하냐고요? 느긋하게 보내는 편이죠. 훈련하고 자고, 책 읽고 자고, 차 마시고 자고, 밤에 자고요. 이제 훈련하고, 까지 끝났네요. 잠깐 눈 붙이고 올게요.

19:04

(르웰린은 예정대로 서점에서 책을 사고 점심을 먹은 뒤 저택으로 돌아왔다. 자신이 없을 때는 서재에 누구도 들이지 않는 그인지라, 먼저 현관에서 그에게 온 편지를 골라낸다. 아무 장식도 봉인도 없는 평범한 편지봉투를 발견한 그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스쳐갔다.)

(서재 문에 끼워둔 조그마한 종잇조각의 위치가 틀어지지 않은 것을 확인한 그가 문을 열고 들어가 책상 위에 책을 내려놓는다. 신간도 미뤄두고는 레터 오프너로 봉투부터 뜯었다.)

아, 이건 일 아니에요. 우편 체스라고 들어보셨나요? 말 그대로 우편으로 두는 체스인데... 음... (당신에게 줄 차를 손수 준비하려는 듯 다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익명의 체스 클럽이 있어요. 지위나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곳이고 서로 신원은 밝히지 않아요. 설령 상대가 누군지 눈치채더라도 모른 척 하는 게 매너죠. 만나는 일도 없고 가입도 우편으로 하고요. 역사가 오래된 곳이에요. 저도 가입한 지 15년을 훌쩍 넘겼네요.

(르웰린은 당신 앞에 찻잔을 내려놓았다.)

여기서도 익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편이죠. 회원들에게 똑같은 필기구를 제공하고 용지를 통일한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런다고 해서 읽어낼 수 있는 정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이분은 오른손잡이시네요, 눈을 감는 게 규칙이니까요.

우편으로 주고받는데다 시간 제한이 없어서 한 게임에 몇 주, 몇 달, 길게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해요. 물론 텀이 너무 길어질 것으로 예상되면 상대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는 게 예의겠죠. 제가 했던 가장 긴 게임은 3년짜리였어요. 이건 두어 번 더 주고받으면 끝날 것 같지만요.